사실 1월 15일자로 바둑 그만두고 원주로 내려왔다

 

1월 9일에 프로입단대회 탈락하고 6일간 기숙사에서 두문불출하다 결국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그만두고 나니까 마음은 편한데 순식간에 백수가 돼버렸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제 바둑 그만둔 스토리를 얘기해볼게




때는 2012년 8월로 돌아간다


바둑도장에서 수련회를 간다고 했다


장소는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도

 

완전 외딴섬이지

 

하지만 당시에 나는 신검받을때 몸무게미달로 4급판정받고 재검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날짜는 병무청에서 통보해준다고 해서 그 동안은 마음대로 아무데나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같이 도장다니는 몇명과 함께 포항에서 열리는 바둑대회에 참가신청을 했다

 

수련회 날짜와는 딱 하루 차이나는 날짜였지 대회 끝나고 다음날이 바로 수련회였다


사실상 안 가겠다고 선언한거지

 

어차피 나는 수련회를 갈 상황이 못됐으니까

 

물론 바둑대회와 재검날짜가 겹친다면 재검을 받을 생각이었다

 

근데 도장 원장이 눈이 멀었는지 안간다고 하는놈들 싸그리 억지로 데려가려고 하더라

 

수련회비는 명당 20만원이었다

 

원장의 계획대로라면 1000만원 정도가 모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비금도라는 섬은 진짜 시설이고 뭐고 사람 자체가 별로 없는곳이다 그저 볼거리는 산과 바다뿐이지

 

게다가 우리에게 나눠준 수련회 안내서를 보니까 돈 들어갈 곳을 억지로 존나 적어놓은거다

 

어차피 난 갈생각 전혀 없었지만 존나 열받더라

 

그리고 예상대로 나한테도 압박이 들어오더라

 

1대1면담을 하는데 나한테 이런말을 하더라

 

"비금도는 너희 사범님들의 고향이기도 하고 그래서 반드시 이번에는 가줬으면 한다.


돈 때문에 안 가는 거라면 그건 정말 한심한 생각이야"

 

사실 내가 배우던 사범은 세계최강 이세돌과 그 형 이상훈사범님이었다 (이세돌의 형도 프로기사임)

 

그런데 정작 금전적으로 청렴하고 귀찮은것도 싫어하시는 이상훈사범님은


안 가겠다면 전혀 말리지 않는 스타일이지

 

기가 막혔지만 나는 '돈과는 상관없는' 원래의 계획대로 말했다

 

'저는 가지 못하는 사정이 있습니다. 재검이 언제일지 모르는 상황에 아무데나 갈 수 없으니까요.


그곳은 배도 하루에 한두번 들어오는 외딴섬이잖아요.


만약 갔다가 못 나가는 상황에 내게 재검오라는 통보가 오면 어떡합니까?'

 

그랬더니 의외로 순순히 인정하더라 나는 안가도 뭐라고 하지 않겠다고 내 앞에서 분명히 말했다

 

그렇게 이 일은 지나가는 듯 싶었는데 나랑 같이 포항대회신청한 몇명에게서 충격적인 뒷이야기를 들었다

 

그들과 원장이 면담을 했다

 

가지 않을거냐고 묻는 원장에게 그들도 안간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 원장이란 작자가 이따위로 말했다고 했다 편의상 내 이름은 OO으로 말할게

 

"OO이는 어머니가 화장실청소하시고 아버지는 암으로 고생중이신데도 20만원 내면서 간다고 했다.


그런데도 너희가 안 가겠다고?"

 

이 얘기 끝나고 나서 당연히 그 몇명은 심각하게 고민했지 내 상황을 전혀 모르니까

 

조심스럽게 나에게 묻자 나는 당연히 극도로 부정했다

 

부정하면서도 나는 씨발 존나 화가나더라 그도 당연할것이

 

씨발 뭐? 우리 엄마가 화장실 청소? 아빠가 암? 이런 씨발 좆같은 경우가 다 있나?

 

씨발 사람이 막돼먹어도 유분수지 이건 뭐 개새끼가 따로없더라

 

거짓임을 알게 된 그 몇명도 당연히 원장에게 극도의 반감이 생기게 됐고


우리는 그 다음날 바로 포항으로 갔다

 

사실 그 자리에서 도장이고 바둑이고 때려치우고 집으로 내려가버릴까 생각했다


이딴새끼 밑에서 내가 공부를 하고있었나 싶어서..

 

그렇게 내 분노를 억누르는 것으로 사건이 끝나는 듯 했다

 

그런데 이게 나에게는 진짜 개같은 반전이 기다리고 있더라

 

시간은 흘러서 내가 입단대회 탈락한 후인 2013년 1월 11일이 됐다

 

기숙사에 있는 나한테 원장이 이렇게 묻더라

 

"아버지는 많이 회복되셨니?"

 

이건 시발 뭐라는거야? 라고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했다.

 

이건 원장이 정말로 진짜로 우리 집안 형편이 그렇게 무너진 것으로 알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렇게 집안 형편을 원장에게 말해줄 만한 사람은 단 한명.

 

우리 엄마.

 

도장에서, 기숙사에서 공부하는 비용 정말 비싸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우리나라 사교육비중 최고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이 별로 넉넉하지 못한것은 맞다. 하지만 정말 이럴줄은 몰랐다.

 

엄마는 내가 공부할 돈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원장에게 그런 거짓말을 했던거다.

 

씨발....내가 자존심 하나는 얼마나 강한데....

 

그 길로 1년 더 해볼까 말까 고민하던 내게 그만두겠다는 확신이 섰다.

 

14일에 기숙사에서 내 짐 다 싸고 원장하고 둘이서 저녁먹으면서 술도 한잔 했다

 

끝나고 나오면서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사실 그동안 말은 안했지만 너 도장에서 공부하는 돈 처음부터 끝까지 변동없이 받았다.


원래 실력이 늘때마다 사범도 바뀌고 도장비도 바뀌는거 알지?


하지만 너희 집 형편을 내가 아니까 그럴수가 없었다.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말고 가슴에만 품고 있어."

 

15일날로 짐 택배에 붙여놓고 원주로 내려가면서 정말 마음이 무거웠다

 

원장이 나를 생각하는 그 마음보다도 엄마가 나를 위해서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것이 너무 큰 상처였다

 

물론 원장은 전혀 존경받을 대상이 아니다.


거짓을 사실로 알고 있었다고 해도 나머지 몇명한테 내가 수련회를 간다고 말한건

 

틀림없는 거짓이다.


필요한 돈을 걷기 위해서 학생을 쥐어짜는 원장은 존경이 아니라 비난을 받아야 할 대상이지.

 

어쨌든 나는 아직도 지금까지 엄마에 대한 그 상처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바둑에 대해 막연한 미련만을 갖고 있다

 

앞날의 갈피도 잡지 못하고


이렇게 집안에 틀어박혀서 코글리나 하고 스타나 하고 인터넷바둑이나 두고 있다

 

내 진로는 앞으로 어떡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정말 답이 안보인다




3줄요약

 

1. 2012년 8월, 도장 수련회가 계획됨. 나는 안 가기로 결정.

2. 원장이 차마 할 수 없는 거짓말을 지껄임.

3. 근데 그 거짓말이 절반은 정말 충격적인 것이었음. 나 시발 지금 존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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