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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 황건적과 페미니즘?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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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14

선 요약 1) 황건적 이야기로 본 혁명 봉기의 4가지 인물 유형.

          2) 본인들은 똑똑한 줄 알지만 페미니스트들은 그저 장기말.

          3) 페미니스트보단 그 뒤에서 페미니즘을 이용하여 이득을 보는 이익 집단을 경계해야 함.

 

 

 

 

 

아주 아주 ~ 먼 옛날 중국 후한의 황실의 황제들은 단명하는 경우가 매우 잦았습니다. 황제가 워낙 어린 나이에 죽다 보니, 다음 대에 즉위하는 황자는 정상적으로 즉위해야 할 시기에 비해 매우 빠르게 자리를 이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황제학을 익히며 정치적 감각과 힘을 길러야 할 시간을 갖지 못한 어린 황제는 무능했기 때문에 이를 꼭두각시 삼아 대권을 노리는 왕의 외척과 환관들의 정쟁이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백성들은 부패한 관료세력의 착취와 끝날 줄 모르는 정쟁, 자연재해로 인한 기근 등으로 몹시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백성들이 생존의 위협에 시달리며 피폐해져 갈 때, 갑자기 어떤 신흥종교가 나타나 지친 백성들을 어루만지고 달래주며 그들의 마음을 훔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윽고 수십만의 농민 봉기,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게 됩니다. 발흥 초기엔 종교적 신앙에 기초하여 사람들을 겉으로나마 위로하는 역할을 맡았었지만(그들은 병을 치료해주겠다며 백성들의 귀중한 쌀을 바치게 하였습니다. 그런 주제에 정작 해주는 건 부적 태운 물을 먹이는 것 뿐이었죠. 

 

점점 시간이 지나며 혁명의 본질은 장각을 비롯한 몇몇 우두머리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 그 이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혁명은 실패하게 되고 농민들이 꿈꾸었던 새 세상이 찾아오긴 커녕, 황건적들을 소탕한 실적을 올린 호족 세력들의 시대가 시작되었을 뿐이었습니다.

 

 

 

뭔가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제목을 보고 들어오신 여러분들은 일면 상관없어 보이는 먼 옛날 중국의 황건적과 지금의 페미니스트가 무슨 연관성이 있다고 그러는 걸까 싶어 들어왔을 것이고, 시작하자마자 뜬금없이 황건적의 역사를 짧게 써놓은 글을 보고 이걸 왜 설명하는건지, 페미니스트 얘기는 무엇 때문에 제목에 써놓았는가 싶을 것입니다. 처음에 짧게나마 황건적 얘기를 꺼낸 것은 혹시 황건적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까봐 무엇인지 설명하려고 쓴 것이니 양해 바랍니다.

 

 

 

 

 

 

황건적 이야기를 쓰며 옛 기억을 찬찬히 더듬어보니 삼국지를 마지막으로 읽었을 때가 대략 5년 전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노란색 표지의 10권짜리 삼국지 시리즈를 직접 사주시며 적어도 3번은 완독해보라고 하셨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아버지께는 죄송하지만 사실 전 1번 밖에 못 봤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유비·조조·손권 사후 그들의 자손이 즉위할 때부터의 이야기는 사실 잘 생각이 안 납니다. 삼국지 후반부 이야기는 왜인지 드라마 야인시대 김두한 중년 시절의 이야기 같은 느낌이라서..

 

이렇게 대충 읽었던 삼국지였지만 1권 초중반에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기 직전 어떤 인물(이름이 안 떠올라서 죄송합니다)이 한 말이 요즘 들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페미니스트와 일견 상관없어 보이는 황건적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가 말하길,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난세에 접어들 때 그것을 타계하고 상황을 뒤집기 위한 혁명이 일어날 때에 4가지 유형의 인간이 있다고 했는데, 그 분류가 대략 다음과 같았습니다.

 

아직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그것을 먼저 느끼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첫 번째 유형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들은 어지러운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돌아갈지, 어떤 광풍이 일 것인지 어렴풋이 느끼는 지식인들입니다. 그들 중에 일부는 이 불길한 바람을 두려워하며 외딴 곳에 은거해버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 어려움속에 뛰어들어 자신도 세상을 바꾸려는 움직임에 동참하려고 합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엔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예측한대로 혁명이 일어나고 맙니다.

 

 

그 혁명을 일으키는 자들에는 혁명을 주도하고 이끄는 소수의 사람들과 이들을 지지하고 따르는 다수의 대중들이 있는데요,

여기서 세 가지 유형이 나눠집니다.

 

혁명을 지지하고 이를 따라 행동하는 대중을 두 번째 유형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들은 똑똑한 소수의 엘리트가 지시하는 방향성에 따라 움직이고, 많은 머릿수를 내세워 혁명을 실질적으로 진행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이 혁명에서 이들은 정말, 진심으로 세상이 바뀌길 바라며 전력투구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지식과 정보가 부족하여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할 능력이 부족한 편이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판단력이 부족합니다. 그리하여 혁명이 성공할 때의 얻는 달콤한 열매도 제대로 얻지 못하며, 실패했을 때의 타격도 비교적 많이 받습니다. 안타깝지만 그야말로 장기말에 불과한 역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혁명을 주도하고 이끄는 소수의 엘리트들에게서 남은 두 가지 유형, 세 번째 유형과 네 번째 유형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세 번째 유형의 인물은 대중을 이끌 힘도 갖고 있으며 뛰어난 머리도 갖추고 있습니다. 이 유형의 인물은 두 번째 유형의 대중들과 마찬가지로, 진심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혁명에 몸을 내던집니다.

뛰어난 능력과 선한 마음을 두루 가진, 어릴 적 만화나 영화에서 볼 법한 멋진 히어로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만화나 영화에서 해피엔딩을 맞는 주인공들과는 정반대로, 이들 또한 대중과 마찬가지로 혁명이 성공했을 때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며 토사구팽당하기까지 합니다.

혁명이 실패하는 경우 가장 먼저 첫 빠따로, 제일 처참하게 역풍을 맞는 것도 이들입니다. 자신은 물론 자손과 가족마저 몰살당하기도 하지요.

 

네 번째 유형의 인물 또한 세 번째 인물과 마찬가지로 대중을 이끌 힘과 뛰어난 머리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혁명의 목적과 명분에는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뛰어난 두뇌와 놀라운 능력, 사람을 홀리는 카리스마를 갖췄지만 세상이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고 철저히 자기 자신의 이득만을 생각합니다.

그 혁명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생기는 떡고물과 혁명이 성공했을 때의 달디 단 열매만이 이들의 관심사입니다.

실제로도 혁명이 성공했을 시 혜택의 대부분이 소수의 네 번째 유형들의 인물들에게 돌아갑니다. 권력과 재력은 물론, 혁명에 성공하고 세상의 질서를 바로 세운(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이 리더들을 지지하는 대중들의 마음까지 모두 다 그들의 것입니다. 실패했을 시 타격을 가장 적게 받는 것도 이들입니다. 실패하기 직전에 그 낌새를 느낄 수 있는 똑똑함과 도망갈 능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일이 그르치기 전에 언제든지 몸을 빼낼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혁명의 최고 수혜자입니다.

 

 

 

 

 

저 시대에 살았던 실존했던 인물이 한 말인지, 삼국지 소설의 작가가 가상 인물의 입을 빌어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상당히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인류 역사상에 일어났던 비슷한 사건들에도 저 공식이 대부분 성립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아니 전세계적으로 이슈인 페미니즘에도 말입니다.

 

페미니즘의 역사는 18세기, 대략 1700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8세기 유럽에 불었던 계몽주의의 바람은 인간의 이성을 중시했고 이러한 이성을 지닌 인간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여성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는데요, 많은 계몽주의자들이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이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계몽주의자들 중에서도 일부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이성을 갖고 있으니 남성과 똑같은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특히 프랑스 혁명 이후 벌어진 여성 참정권 부여 등에 대한 논쟁이 근대적 성 평등 이념을 본격적으로 이끌어냈습니다.

 

페미니즘이 태동한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부터부터 20세기 초반의 페미니즘은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얻고, 여성의 자유와 선택을 존중해주길 바랬습니다. 이 때도 나름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어쨌든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해달라는 큰 틀을 벗어나진 않았습니다. 앞서 등장한 여느 사상들과 마찬가지로 페미니즘 또한 초기에는 첫 태동 당시의 명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점점 페미니즘에도 여러 가지 분파가 생겨나게 됩니다. 이후 2세대, 3세대 페미니즘과 이들의 분파들에 대한 설명을 하고 넘어가면 글이 너무 길어지므로 생략하고 이 중 하나인,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흔히 일컫는 이퀄리즘이라는 개념은 여성뿐만 아니라 다른 차별받는 소수자(동성애자 등)의 권리를 신장시키자는 상호교차성 페미니즘과 유사성을 가집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다른 분파의 페미니즘은 조금씩 힘을 잃어갔고, 전세계적으로 래디컬 페미니즘이 페미니즘의 주류가 되면서 이에 대한 반발과 비판적인 여론 역시 강해졌습니다.

 

래디컬 페미니즘은 2세대 페미니즘에서 발생되었는데 기존 1세대의 페미니즘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 사회적 성 평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성 차별이 지속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각고의 고민 끝에 이들은 아직까지도 이 사회가 가부장제, 남성중심의 사회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이 차별받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즉 가부장제를 타파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성 평등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결론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페미니즘 또한 여느 사상들과 마찬가지로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 당시의 취지는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룩하고자 하는 목표가 현실적인 목표에 부딪히며 좌절되고, 그 틈을 이익집단이 파고들어 이를 이용하려 들기 시작하자 이내 변질되고 맙니다.

 

현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주된 주장은 ‘이 세상에 발생하는 모든(혹은 대부분의) 사회적 문제가 가부장제, 즉 남성 때문이다.’ 로 요약됩니다. 성별 여부와 상관없는 문제뿐만 아니라 명백히 여성이 잘못한 문제의 경우에도 원인은 남자 탓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속편하고 이기적인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잘 되면 내 덕, 안 되면 네 탓.

 

세상사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수 십 편의 논문과 서적을 집필한 저명한 학자들, 역사적으로 길이 이름을 남긴 위대한 철학자들도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과 그 원인을 100% 완벽하게 꿰뚫어보지는 못했습니다.

 

근데 이들은 참 명쾌합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 ‘응 가부장제 때문이야, 응 남자 때문이야.’ 세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의 원인과 이유가 오직 하나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얼마나 세상이 살기 좋고 편하겠습니까.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죠. 세상은 1+1=2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원인이 2+3이라면 5라는 결과가 나오고 2x3이라면 6이라는 결과가 나옵니다. 다양한 원인만큼 다양한 결과가 나옵니다. 또한 답이 같은 5일지라도 그 원인은 1+4일 수도 있기 때문이고 혹은 10÷2 때문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비슷하고 똑같아 보이는 결과도 분석해보면 원인은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멀리 나갈 필요 없이 어린 시절 수학문제만 풀어봤어도 느낄 수 있는 간단한 세상사입니다.

 

원인이 먼저 발생하면 그 뒤에 결과가 따른다,

비슷하고 같아 보이는 결과도 원인은 다를 수 있다.

하나도 어렵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아주 단순한 진리입니다.

 

하지만 그치들의 부족한 대가리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나 봅니다. 결과가 6이든 9든 앞에 오는 원인과 수식은 무조건 가부장제입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천 가지 만 가지 일들 중 어떤 문제는 정말로 가부장제 때문에, 남성에게 부여된 지나친 권력 때문에 발생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얼마나 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든 결과의 원인이 가부장제, 남성 때문이라고 부르짖습니다.

 

 

 

 

이 변질된 래디컬 페미니즘 혁명을 지지하는 자들 중,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인물 유형 중 두 번째 유형에 해당되는 ‘혁명에 동조하고 따르는 다수의 대중’에 해당하는 사람들에 대해 가장 먼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어떤 바보가 하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바보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그냥 저냥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세상사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욕구에 몸을 맡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어떤 글을 봅니다. 그 동안 조그만 햇볕들 일 없던 바보의 대가리 속에 갑자기 번갯불이 번쩍합니다. 평생 공부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해보지 않았을 어둡고 어두운 그 대가리 속에, 아주 약한 빛이 내리쬐어도 놀랄 판국에 번개가 치다니!

 

그 사상은 바보의 대가리 속에 너무나도 강하게 각인되어 순식간에 바보의 생각과 행동의 근간을 바꿔버립니다.

그들은 갑자기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느낍니다. 그 동안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였는데 너무나도 놀라운 어떤 생각과 사상이 자신을 우물에서 끌어올려주며 세상 보는 눈을 다시금 일깨워줬다고 여깁니다.

갑자기 주위 사람들이 좆병신들로 보이는 마법이 일어났습니다. 내 주위의 인간들이 세상이 얼마나 잘못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자기 일만 하며 살아가는 우둔한 백성들로 보입니다. 아아, 나는 현자입니다.

 

 

 

 

 

평범한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정상인입니다. 어린 시절, 그 사람은 어떤 책을 읽다 우연히 인상 깊은 구절을 보고 깊은 상념에 빠집니다. 뭔가 세상 한 켠에 대한 진리를 깨우친 듯한 느낌이 듭니다. 어린 시절의 그 아이는 모두가 깊이 잠든 밤, 홀로 새벽을 지새우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빠집니다. 자기 자신이 대견스럽습니다. 견문이 넓어진 느낌이 들어 기쁩니다.

 

때로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며 밤을 지새우기도 합니다. 그러다 고민을 해결할 훌륭한 방법이 문득 떠오를 땐 내 머리가 그래도 제법 쓸만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내심 스스로 자랑스러워합니다. 독서를 하고 공부를 하고, 사회 경험을 쌓으며 그의 마음 속 칠판은 여러 가지 글과 그림들로 점차 풍요로워집니다. 머릿 속에 번쩍하는 광명이 일 때마다 짜릿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점점 성장하면서 본인의 마음 속 칠판에 썼던 글과 그림이 무조건 옳은 것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린 시절 어느 책 속의 인상 깊었던 구절이 절대적으로 옳고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고, 그렇게 고민하고 씨름했던 문제들과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들 모두가 지나고 보니 아주 사소했던 것임을 자연스레 느낍니다. 어떤 토론에서 고집스레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다 상대방의 견고한 논리에 무너져 패배감을 맛보기도 합니다.

 

견문을 점점 넓혀나가자 이제는 지우개가 생겼습니다. 귀찮고 인정하기 싫지만 필요에 따라 내 마음 속 칠판의 틀린 부분을 받아들이고, 잘못된 것을 지우고 새롭게 고칠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벼가 익으며 고개를 숙이듯 알면 알수록 겸손해집니다.

 

살아오면서 겪은 그 동안의 경험들을 통해 내가 무조건 옳은 게 아니라 때로는 틀릴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을 항상 가지게 되고 작은 문제도 신중하게, 천천히 조심스럽게 대합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성인의 정신적 성장 패턴입니다.

 

 

 

 

하지만 모자란 이들의 마음 속 칠판은 다릅니다. 본인의 텅텅 빈 대가리 속에 처음 쳤던 그 번개의 그을음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내 칠판 속의 이 그을음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생각도 없고, 지우개를 만들 능력 또한 못 됩니다. 자기 스스로 어떤 문제를 진지하게 고찰해본 적도, 다양한 분야의 독서와 공부를 해본 적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사회 경험을 쌓지를 않는데 어떻게 새로운 생각을 하고 지우개를 만들 수 있을까요?

 

 

 

 

잠깐 더닝 크루거 효과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쉽게 예를 들자면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했을 때와 대충 공부했을 때, 시험지를 받았을 때 느끼는 기분을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열심히 공부한 경우 시험지를 처음 받아들었을 때 어느 정도 아는 문제가 있더라도 푸는 내내 불안하고 조심스럽습니다. 지식을 쌓을수록 오히려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의 전체 부분에서 내가 모르는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 비로소 깨닫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를 평가할 때 과소평가하게 됩니다. 스스로에 대한 과소평가는 그를 더욱 더 노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나 대충 공부해서 껍데기만 겨우 아는 경우에는 시험지를 받았을 때 오히려 공부를 열심히 했을 때보다 더 쉬워 보입니다. 더 이상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게 되고, 이는 더 나은 단계를 위해 발전할 여지를 없애버립니다.

 

 

 

 

무식한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모르는지 조차 모릅니다. 뭔가를 모르는 것보다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 더 위험한 법입니다. 자신이 무지하다, 모른다는 것을 깨달아야 비로소 배울 준비가 되는 법인데, 그것조차 모른다면 그 사람은 성장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유명한 예능인 이경규 씨가 한 말이 있죠. 무식하고 잘 모르는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습니다. 딱 ‘그 분들’에 부합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사람들', 이 덩치만 큰 정신적 지진아들의 주 무기는 낮은 수준의 방어기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정작 본인들은 자기 자신들의 사용하는 것의 무기가 무엇인지, 그것을 사용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지만 말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방어기제는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습니다.

정신력이 약하고 의지가 약한 사람만이 방어기제를 통해 온갖 핑계를 만들어내며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는 데만 사용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멘탈이 단단한 사람도 정신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며, 막대한 스트레스(전쟁, 자연재해, 가족의 죽음 등)를 받는 상황에 처한다면 올바른 방어기제를 사용해 천천히 심리적 상처에서 회복해야만 합니다.

 

이 스트레스를 방어기제로 해소하지 못하고 점점 쌓여만 간다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위의 설명에서 ‘방어기제를 사용하되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종내에는 방어기제가 자기 자신을 속이게 되고, 어떤 일이 생기든 갈등을 해결하려 하기보단 이를 바라보는 관점만을 바꾸는 습관이 들어 정신적 성장을 제대로 못해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힘듭니다. 우리한테 반드시 필요하지만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연구에서, 방어 성숙도 수준이 낮은, 즉 하위 단계의 방어기제를 오·남용하는 사람일수록 스트레스 요인이나 심리내적인 갈등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므로 심리증상 심각도 수준이 높았습니다.

반대로 방어 성숙도 수준이 높을수록, 즉 올바른 방어기제를 필요할 때만 사용한 사람일수록 심리증상 심각도 수준이 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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